본문 바로가기
영화.문화.연예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2회 김신조사건

by UGCUGC 2021. 5. 4.

SBS에서  방영했던 프로그램입니다. 지금은 시즌2를 방영하고있는데

우연히 재방으로본 1회 '수지킴 간첩 조작사건'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우리가 잘 모르는 옛날(?) 실화를 장도연, 장성규, 장항준감독이 자신들의 친구에게 이야기해주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제2화는 김신조 사건입니다.

 

1968년 1월21일 일요일저녁

북한 최정예 특수부대인 124부대 31명이 5개조로 나눠서 대통령암살과 청와대습격을 4분만에 올킬할 계획

5조는 못이박힌 방망이로 정문 보초살해

1조는 청와대 2층으로가서 대통령암살

2조는 청사1층 점령

3조는 경호실 전원살해

4조는 비서실 전원살해

 

첫번째 장애물은 휴전선앞 3M철조망으로 펜치로 소리안나게 2/3만 자르고 나머지는 손으로 자른후 원상복귀 해놓기

두번째 장애물인 임진강은 겨울이라 얼어있어서 걸어서 건너는데 티가 안나게 머리는 흰붕대로 감고 몸은 흰천으로

감싼채 최대한 낮은자세로 은밀침투를 하는데 한시간에 2-3m만 움직이고, 인기척이 나면 1시간동안 부동자세로

움직이지 않았고. 기침이 날거같은면 얼른 소금을먹는등 이동원칙은 마을과 도로를 피해서 밤에만 이동하고 낮에는

무덤에서 몸을 숨길수 있을 만큼만 파고 판 흙도 주변에 모두 뿌려 티가 안나게 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이동중 파주군 법원리 산봉산 근처에서 나무하러 온 네청년과 마주하는데 "나무꾼을 만났는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 상부의 결심을 바란다"라는 무전을 보냈고 이에 얼마있다가 상부의 답이 왔는데 무전담당이 어이없게도

라디오에서 나오는 난수표 해독을 못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각소대 에이스들이긴 했으나, 분야별 특기병은 없어서 이런 결과가 나온듯 하다고 추측하네요.

나중에 우리나라 암호해독가가 암호를 해독 해보니 북한당국에서 온 답은 '원대복귀' 작전취소였다고 합니다.

해도기 안되니 자기들끼리 죽이자 살리자 의견이 분분하다가 18:13으로 살려주기로 하고 마을로 보내줬습니다.

그당시에 북한은 진짜로 우리나라 국민이 피죽도 못먹는다고 선전을 했고, 그래서 일반 국민을 진짜 불쌍하게 봐준

결과라고 하네요.

마을로 내려온 청년들은 경찰서에 신고를 하고 그때부터 우리군은 열씸히 수색을 시작했지만

이들의 이동속도가 우리가 계산한 이동속도보다 너무 빨라서 공군헬기로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매일 맨발로 산악유격훈련을 받은 그들은 30kg 완전군장으로 1월의 눈쌓인 산악지대를 시속10km로 행군을 했다고

합니다 "무장한채로 그렇게 빠른속도로 이동할줄은 내 군대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그 당시 국방부장관이

말했다고 하네요.

 


자하문초소에서 검문중이던 경찰2명에게 검은 캔버스화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오는 31명의 무리들은

자신들을 "우리는 CIC대원들이다(방첩대: 적국의 간첩인나 첩보활동을 저지하는 임무를 하는부대)

산악훈련하고 돌아오는 길이니까 까불지마 니네랑 상대할 사람들이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무장도 안했고 수갑 2개만 있었던터라 몰래 종로경찰서에 수상하다고

연락을 하고, 이들을 쫒아갔는대 청와대 300M근처까지 갔을때 종로경찰서 서장이 와서 누구냐고 묻고 신분을 밝히지

않으면 못 지난간다고 하자, 지지않고 큰소리치던 이들이 1813번 시내버스가 헤드라이트가 켜고 달려오는것을 보고

군부대인줄 착각해서 이때부터 기관단총을 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해서 버스에 탄 민간인들이 죽고, 이들은 산으로

숨어 버렸습니다.

이때부터 우리군은 수색해 28명은 사살됐고, 2명은 북으로 다시 넘어갔다고 추측되며, 김신조 대위만 자수해서

11개월간 심문받고 1970년 4월10일에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21사태는 김신조 사건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하네요.

 

이 사건으로 인해서 전 군인이 제대보류, 휴가중지, 복무기간 6개월 연장되었고

이당시 유격훈련, 화생방, 예비군 창설, 교련수업, 반공 웅변대회등 생겼습니다.

요즘도 하는지 모르겠지만, 교련시간에 붕대감는 법을 했던게 생각 나네요

주민등록증과 광화문의 이순신장군 동상도 그때 세웠고, 현재는 드라이브 코스인 북악 스카이웨이도 청와대

경비강화 용으로 그때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