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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건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 1급흑색공작관 윤대령 KT납치사건

by UGCUGC 2020. 11. 20.

 1급흑색공작관 윤대령 KT납치사건 

 

1973년 일본 호텔에서 KT공작단은 KT를 납치했고, 납치 5시간후 오사카에 도착

엔진고장이라고 정박시킨지 열흘된 화물선 용금호에 태웠다.

얼굴과 온몸을 테이프로 칭칭감은 KT를 바다 한가운데 용금호에 옯겨싣고 본부에 무전을 친다 "접수"

비밀유지각서까지 받아놓은 선원들이 KT의 망가진 테이프를 다시 붙이는데 그는 우리 모두가 알고있는 사람

제7대 대통령후보 김대중이었다.

이배의 주인은 중앙정보부 의 비밀공작선 배였던거다

여기서 바다에 던져서 김대중을 죽이면 우리들도 살려주지 않을것 같아 선원들도 공포였다고한다.

 

중앙정보부는아주 오랫동안 KT를 감시하고 있었다. 일본자위대출신 탐정을 고용할정도로

KT관련  감시보고서가 수천장이었다고한다.

그당시 국회의원도 아닌 김대중을 왜 이렇게 감시했을까????

 

납치사건2년전

1971년 4월 야당후보 김대중과 3선에 도전하는 박정희.

결과는 박정희의 승리였지만 부정선거임에도 투표차가 얼마나지 않아서 위험하다고 직감하고 감시하기

시작한다.

대선후 김대중은 14톤 트럭과의 수상적은 사고로 평생 지팡이를 지니게 되고

그밖의 연이은 사고와 주변의 권유로 다리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대선 5개월후 박정희는 10월 유신으로 국회해산, 정치집회금지, 대통령 직선제 폐지등

그후로 16년간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을 뽑지 못하게 되는데...

그때부터 김대중은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유신반대운동을 했고 몇일후 미국으로 가게 되어있었고

그래서 중앙정보부가 급하게 직접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당시 중앙정보부 우두머리 중앙정보부장은 제갈조조로 불리는 이후락부장이였는데

북파공작원들이 속해 있는 육군첩보부대 출신 현역 육군대령 윤대령이라는 사람에게 KT공작단 일을 맡겼다.

이 사람이 윤씨인걸 아는데만 20년이 걸릴정도로 자료에도 없는 유령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1.21사건(김신조사건)이후 북한에 복수하기위해 만든 실미도부대를 창설한 인물이기도하다.

 

김대중을 납치한 용금호가 부산항으로 돌아오던때

미국 CIA 한국 지부장은 김대중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 미국 대사관에 연락한다

미국이 김대중을 구해줬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확실한 건 미국이 김대중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는것이다.

드디어 납치6일째 그들은 김대중을 집앞에 내려놓고 갔다. 그는 납치 129시간만에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바지주머니에는 애국청년구국대의 쪽지가 들어있었고, 그 다음날부터 애국청년구국단을 잡는다는 미명하에

정부는 그의 집앞에 바리케이트를 치고 대놓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이사건으로는 아무도 처벌받지 않고 미궁속으로 진실은 감춰졌고

그이후 2004년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도  KT사건에 관한 한 종이한장 나오지 않았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이사건과 관련된 모든이들을 용서한다고 했지만 

과연 용서가 답인지...

그래서 계속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나오는건 아닌지...

이 사건은 어떤 이유인지 몰라도 살아 돌아오셨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는 합리적의심(?)이 ...

프로그램중 김이나씨가 얘기했던 우리가 개미가된거같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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