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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아픈 역사 서삼릉 태실 일반에 한시적 개방

by UGCUGC 2020. 11. 12.

서삼릉 태실 일반에 개방 

고양시 원당동에 있는 서삼릉중 현재 비공개구역이었던 제12대 인종과 인성왕후의 무덤인 효릉과

소경원(소현세자)을 제외하고 태실, 왕자,왕녀묘, 후궁묘와 연산군의 생모인 폐비윤씨의 회묘를 10월 16일부터

일반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조선왕릉누리집에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하면 월요일을 제외하고 하루세번 한회에 20명까지 해설사님과 동행하고

관람할 수 있습니다.

 

'서삼릉 조선왕실의 태실과 분묘군'는 전국의 명산에 있던 국왕,왕자,왕녀의 태실과 서울,경기일원에 있던 왕자,왕녀,후궁

의 무덤을 옮겨놓은 곳입니다.

태실이란 왕실에서 태어난 아기씨의 태를 묻은 곳으로 태를 항아리에 담아  전국 명산의 좋은자리에 모심으로서

아기씨의 건강과 번영을 기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인 1928년부터 1930년에걸쳐 전국의 국왕과 왕실가족의 태실54기가 발굴되어 이곳으로 옮겨지며

지금의 공동묘지같은 형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태항아리와 태지석은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이곳에는 비석만 남아있습니다.

1930년대에는 왕자,왕녀,후궁의무덤을 옮겨왔고 60년대에도 도시화개발과정에서 서울,경기지역에 있던 후궁들의 묘가

이곳에 옮겨졌으며 1969년에 동대문구 회기동에 있던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회묘를 이곳으로 옮겨왔습니다.

오석비석

조선시대에는 태를 매우 귀중하게 보관아였으며 왕실에서는 백자항아리에 담아 명산에 묻었는데 이 백자항아리들이

많이 도굴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이곳 태실에는 왕과,황제,황태자의 태실22기가 오석(검은)비석에  왕실과 황실의 가족들 태실32기가 화강석

비석에 있습니다.

화강석비석

심지아 일본이 조성할 당시에는 하늘에서봣을때 날일자 모양으로 담장을 만들어놓은걸 1995년에 철거하고

현재의 모양이 되었다고 합니다.

훼손된 태실비석뒷면

일본은 민족문화를 파괴하기위해 태실을 파괴하고 일본식 연호을 새겼는데  그 자리를 누군가가 파서 다지워놓은

흔적이 있습니다.

충남 서산 명종대왕 대실 및 태비

원래의 태실은 신분에 따라 차이는 있을수 있지만 명산의 좋은자리에 모셔둔 이런모양이라고 합니다.

왕자,왕녀묘

바로옆 왕자묘8기와 왕녀묘 14기등 22기의 묘가 모여있습니다.

빈,귀인묘

조선과 대한제국 국왕과 황제의 빈과 귀인 후궁묘16기가 있습니다.

빈은 정1품으로 중전다음으로 현재로는 국무총리정도이고 귀인은 종1품 빈 바로아래이며 현재로는 부총리쯤

되는 높은 벼슬이라고 합니다.

폐비윤씨의 회묘

연산군의 생모 폐비윤씨의 회묘입니다.

연산군이 즉위하면서 회릉으로 격상시켜으나 중종반전으로 회묘로 다시 강등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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