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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 ,옛이름은 경운궁

by UGCUGC 2020. 11. 19.

대한제국의 황궁 덕수궁 

 

조선14대 선조가 임진왜란때 피난을 갔다가 돌아온후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집을 임시거처로 삼으면서 처음

궁궐로 사용되었고 이후 경운궁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다시 왕이 머문것은 1895년 을미사변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조선26대 고종이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다가 1897년2월에 덕수궁으로 환궁하게 되었습니다. 경운궁으로 돌아와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꿔서 자주독립

국임을 밝히고 궁궐의 영역을 확장, 규모와격식을 갖추게되었답니다. 다시의 규모는 현재의 3배가까이 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1907년 강압에 의해 고종이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덕수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고

1919년 승하할때까지 이곳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대한문

원래 궁궐의 정문은 남쪽으로난 인화문이었는데 경운궁의 동쪽이 새로운 도심이되자 동문인 대안문이 정문이되고

1906년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70년 태평로를 확장하면서 더 뒤쪽으로 물러나게되면서 대한문 안쪽 금천교와

너무 가깝게 되었다고 합니다.

중화전과 답도

이곳으로 환궁한 고종이 즉조당을 정전으로 사용하였으나 협소해서 1902년 중화전을 지었습니다.

본래는 2층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된후 현재의 단층으로 중건되었습니다.

정전인 중화전 기단부 계단의 '답도'를 원래왕들은 봉황으로 하는데 '용문양'으로 하고 창호도 황색으로 칠해서 황제국의

위상에 맞게 지었습니다

답도: 중심전각앞 게단 가운데부분을 장식하는 사각형돌 '가마를탄왕이 그위를 지나가는길'이란 뜻입니다.

석어당 앞면 완쪽은 즉조당

즉조당은 대한제국 초기에 정전으로 사용되었고 중화전이 지어진 후에는 편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석어당은 덕수궁에 남아잇는 유일한 중층 목조건물로 1904년 불타 없어졌던것을 다시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피난갔다 돌아온 후 거처로 삼았던 선조가 단청을 하지 말라고해 단청이 없는것이 특징입니다.

기존 궁에서 볼 수 없는 아주 독특한 모양으로 아주 눈에 띄는 건물입니다.

석조전 대한제국 역사관

1910년에 완성된 석조전은 접견실과 대식당등 공적인 공간과 침실,서재등 생활공간까지 갖춰진 대한제국의 대표적

서양식 건물입니다. 일제강점기에 미술관으로 사용되어 많이 훼손되었는데 역사적의의를 회복하기위해 2009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현제는 대한제국 역사관으로 개관하였습니다.

지하층은 현재 예약없이 관람가능하나 지상층은 현재는 인터넷 예약을 하고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석조전 후원

 

국립현대미술관

원래는 석조전 서관이었는데 지금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탄생100주년 기념: 박래현,삼중통역자를 1월3일까지 전시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예약후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정관헌

지붕은 동양식으로 건물은 서양식으로 난간은 전통문양으로 만든 독특한 양식의 정관헌입니다.

고종이 휴식을 취하거나 외교사절단을 맞이했던 장소라고 합니다.

 

월요일은 휴관일이고 입장료는 천원입니다.

천원으로 즐길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아닐까 합니다.

어린시절 미술대회 갔던이후로 고궁이란곳을 몇십년만에 갔는데 생각보다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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