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문화.연예

무력에 의해 강제로 체결된 을사늑약의 아픔 중명전

by UGCUGC 2020. 11. 29.

덕수궁까지 가셨다면 가까운 #중명전도 꼭 둘러보시길 바래요

덕수궁 후문(평성문) 석조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사이에 있는 문입니다.

거기로 나와서 정동극장 입구옆길로 들어가면 중명전이 나옵니다.

멀지않아요. 걸어서 한4~5분정도 걸리는거 같아요  

가면서도 실내에 전시실이 있는줄 몰랐네요. 겉에만 보고 오려고 했는데, 꽤 전시실이 잘되어 있었어요.

마침 관리하시는분이 잠깐 나오셔서 입장이 가능하다는것을 알았네요

 

제1전시실 덕수궁과 중명전

아관파천후 덕수궁으로 환궁한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 선포하고 중명전은 1904년 덕수궁화재이후 황궁의 편전으로

사용되었으나 1907년 고종이 강제퇴위하고 기능을 읽어버렸다.

 

 

제2전시실 을사늑약의 현장

1905년 11월17일 늦은저녁~18일 새벽

일본군대에 둘러싸인 중명전에서 을사늑약체결이 강행되었다.고종의 승인도 없이 일본에게 외교권을 빼았기고 만다.

<<을사늑약의 진실>>

1.최소한의 형식도 갖추지 못한 부당한 조약

2.군대를 동원한 무력에의한 강제로 체결된 조약

늑약이란 무력 또는 강압에 의한 억지로 맺은 조약을 의미한다.

을사늑약문

정중앙에 이토히로부미와 왼쪽부터 을사오적 이근택 권중현 이지용 이완용과 일본인 하야시 곤스케 , 박제순

오른쪽 끝부터 이하영 민영기 한규설은 반대했지만 이후 한규설을 뺀 두명은 친일로 돌아섰다는의견도 있다.

 

 

제3전시실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황제어새

보물 제1618호 대한제국 고종[황제어새](복제품)

순종즉위식 삽화도

1907년 7월20일 중화전에서 황태자(순종)의 대리청정을 축하하는 의식이 대역으로 진행되었다

일제는 이를 양위식으로 위장하고 중명전에 각국 공사들을 불러 순종의 황제즉위를 공식화하려고 했다.

이삽화도 실상은 대리청정장면이나 외국에는 고종의 퇴위식으로 소개되었다.

실제의 즉위식은 8월27일 돈덕전에서 고종이 참석하지않은채 거행되었다.

 

제4전시실 대한제국의 특사들

헤이그특사등 구미각국에 특사를 파견하였으나 국제질서에서 외면당했다.

 

 

정동공원

 

구러시아공사관자리도 보고싶었는데 공사중이라 볼수 없어서 아쉽네요.

구러시아공사관

댓글